Dotty Studio

기업가정신 & 스타트업, 그리고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곳.

테크스타에서 으샤으샤.

어쩌다보니 Techstars 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서, 멀리 집을 떠나오게 되었다. 이래저래 가족과도 떨어져서 장기간 지내게 되다보니 싱글로 돌아간 기분인데 체력만 예전같지 못하다. Facetime 덕분에 그나마 매일 가족과 안부를 전할 수 있어서 세상 참 좋아졌다 싶다.

이름 동신의 받침없는 부분을 떼서 Dosh라는 alias를 하나 지었는데 요걸로 영문 블로그를 개설했다. 요즘은 .co나 .io가 간지라길래 하나 장만. 텀블러에서도 요즘은 본문 포스팅에 이미지 여러개 및 글을 섞어서 쓸 수 있게 되어서 사실상 간편한 블로깅 플랫폼이 된 듯. 

앞으로 Techstars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이야기는 영문 블로그에서 간단하게 녹여내볼 생각이다. 계속하여 편안한 곳을 벗어나야한다.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Stretch goals.

출근 길. 고전미가 있는 도시 런던.

그나저나 런던이라는 곳은 보스톤의 확장팩 같은데 (정확히는 보스톤이 런던의 축소판) 가끔 날씨가 흐릿해지는거 말고는 참 마음에 든다. 한국 처럼 여기도 꽤나 보수적인 곳인데 (투자자들 성향이 한국과 미국의 중간 정도 느낌? 이런저런거 할때 요구하는 서류도 한국과 미국의 중간정도) 살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일단 총기휴대하면 최소 몇년 징역이라니 좀더 안전할 듯 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만해도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 옆에서 누가 칼에 찔렸는지 피흘리며 쓰러져서 경찰이 구역 차단하고 수사하는 걸 카페안에서 생생히 구경.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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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1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4/04/11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Escorts in Delhi 2014/08/18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당신과 함께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서비스는 매우 우수하다.

  4. 2014/11/03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일요일 아침 8시에 회사에 나와 배경음악을 고르려고 Spotify를 켰다. 'Browse'를 누르자 Featured Playlist에 다음과 같은 목록이 추천된다.

그래. 오늘 일요일이지. 일요일인걸 감안해서 Sunday Lounge와 Sunday Drive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아직 아침의 선선한 기운이 채 가시기전인데, Acoustic Morning이 있다. 호기심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본다.

아침에 관련된 것 하나 더, 그리고 Rainy Day가 보인다. 음? 찾아보니 오늘자 런던의 일기 예보는 '비'이다.

비올때 어울릴 법한 음악이라니! 날씨 데이터를 음악 추천과 연결시키다니 절묘하다 싶다.

옆에 동료들은 주말 아침에 운동하고 오겠다고 헬스장으로 갔다. Weekend Warrior. 주말에 운동할 때 듣기 좋은 파워풀한 음악.

아마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거나 집에서 뒹구는 사람도 많겠지. 그리고 주말에는 주중에 못한 데이트도 하겠지. 준비되어있다.

사실 Spotify는 Browse말고도 Discover 메뉴도 훌륭하다. 내가 들었던 음악을 기반으로 아래처럼 추천해주는 건 기본. 지역 기반으로 '너 지역에서 요즘 이노래가 뜨고 있지' 라던가 '너가 대학교 시절에는 이 노래가 유행했었는데 추억돋지?' 같은 건 기본이다. 

이 정도 추천이면 '뭐 괜찮군'이 아니라, '아 이건 정말 알려야해'가 된다. 끝없이 새로운 음악을 내 취향에 맞게 발견할 수 있고, 지금 내 상황에 맞게 골라서 들을 수도 있다. 

Spotify가 작가들에게 아직 충분히 돈을 벌게 도와주고 있진 못한 듯 하지만, 이 정도면 유저에게 주는 가치는 감동의 수준이다.

아쉬운건 한국에서는 가입이 아마 안 되던듯. 미국 등에 출장 나오시면 가입해서 써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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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반 2014/03/24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 할려니 안되는군요..한국이라 가입이 안되는것 같아 아쉽네요..흑

  2. BlogIcon yiabb 2014/03/25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Vpn/외국계정으로 접속됩니다

  3. 2014/04/06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2014/11/03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글을 퍼오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널리 퍼지면 좋은 글일 듯 하여 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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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에 일부분인데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대략 우리가 좀 비루하게 인식하기도 하는 조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하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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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여기서부턴 수학에 관한 내용인데, 관심있는분만 읽어보셔요 -------------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2차 출처: http://baseballpark.co.kr/bbs/board.php?bo_table=bullpen3&wr_id=290837

2차 저자: 네로울프

원출처: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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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ngsil Oh 2013/03/25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 감사해요^^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공유합니다

    • 이정미 2014/01/08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내용, 재밌게,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습니다~~.

  2. 장보영 2013/03/29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아름답습니다.~^^

  3. 23살 2013/04/11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왜 제국은 인정을 안하는거죠??너무 우리나라만 띄우려 하는거 같은데

  4. 김봉수 2013/04/26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것도 그렇지만 특히 수학은 감동입니다..

    • Kris 2014/01/10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습니다. 수학이라고 안보셔도 된다는 부연설명까지 있어서 그냥 생략할까하다 그래도 궁금하여 봤는데 대박입니다....

  5. 츠네오 2013/06/20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 )

  6. 손현기 2013/09/1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이렇게 말이 많고, 이기적이고 시덥잖은 소리나 해대니까 맨날 침략이나 당하고 팽창해나갈 여력이 있을때 힘을 축적하는게 아니라 내부투쟁이나 하고.......이건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 등 반도 종특인거 같기도 하다만...뭐 그래 얇고 길게가는 인생도 나쁘지는 않다.

    • 질문 2014/01/08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글은 과거 있었던 일로부터의 최소한의 '앎'이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른 시대에 과거의 '사실'을 가지고 와서 비교하며 종특이라고 비판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말씀하신 부분들이 틀리거나 잘못된 사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댓글의 요지가 글과는 많이 다르며,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과거의 사실들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비판만 하며 쉽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아쉬워 댓글을 남깁니다. 보는 입장에 따라 글과 같은 입장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손현기' 님의 의견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의견이 다르다면 글을 남기시는 방법이 한참 잘못되지 않았는가 싶네요.

  7. BlogIcon Tadd 2013/10/25 0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 정말 훌율합니다.

  8. 위드유 2013/10/25 0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 보았습니다.

    한가지 옥에 티가... '한일합방'은 '한일병탄'이 맞습니다.

  9. 김선(Pascran) 2013/12/19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들러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예전처럼 irc에서 대화 나누던 때가 그립습니다~

  10. 박선생 2014/01/03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말도 안돼는 궤변을 늘어놓다니.
    역사관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 서울대 교수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 게 더 안타깝다.

    • 좋은생각 2014/01/04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댁이 안타깝네요 40중반인 아줌마가 읽어도 괘변이 아니라는걸 알겠구만

    • 질문 2014/01/08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글을 보며 박선생님과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사관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라 이렇게 질문 남깁니다.

      말씀대로 저 또한 역사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기에 어떤 부분에서 왜 이 글이 궤변인지 알고 싶습니다. 분명 다른 의견,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생각을 혼자 하고 계시며 스스로를 대단하다, 자랑스럽다 라고 느끼지만 마시고, 혹시라도 그 생각들에 확신과 믿음이 있으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하고 혹은 알리는게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는 말을 하셨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이유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말씀하신대로, 박선생님은 지식인이시라는 전제 하에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 근거로 주장하기 2014/01/13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궤변일 수도 있고 사실에 근거한 주장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본문은 사실들을 근거로 하고 있는 듯 하니, 궤변이라 주장하시는 분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 주장을 펴셔야 보는 사람의 동의를 얻으실 것 같습니다. 궤변인 이유는?

    • BlogIcon 용크 2014/09/06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라는거야;

  11. 먼박선생 2014/01/04 0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박선생은 친일파이신가?궤변이면 그 이유를 대던지

  12. 김숙련 2014/01/04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지를 깨우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13. 미국 2014/01/05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 고맙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을 받고 남북으로 갈라진데는 우리의 책임이 큼니다
    가슴아픈 역사 입니다

  14. 서동민 2014/01/05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15. 한용오 2014/01/06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북에서 이글을 보고 찾아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잘 설명하셨네요.

  16. himoon 2014/01/06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7. 요하 2014/01/06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드립니다ᆞ많은공부되었습니다ᆞ^^

  18. 123 2014/01/06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대박....

  19. 미쓰 2014/01/06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이렇게 저력있는 민족인데 오늘날은... 삼국시대의 수학이나 조선시대 과학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무엇보다 왕이 통치하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의견들을 무시하지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치고 고쳐가며 통치했다는게 감격스럽네요 지금 우리는 좀더 빠르고 편리하고 정확한 시대에 살고 있기는 하나 민주주의는 백년전만 못한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선이 500년동안 유지할수 있었던게 국민들의 힘이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할수 있지 않을까 반성하고 깨우치게 되네요

  20. BlogIcon Rin 2014/01/07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혹 이 글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21. 남채현 2014/01/07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22. 지나가는 사람 2014/01/07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의 밝은 면만을 기술하셨군요...오히려 저렇게 어중간한 대민정책따위가 없었다면 조선은 더 나은 시민사회로 발전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온 나라를 전란의 위기로 몰아놓고 도주하기 바빴던 선조, 소중화 사상에 빠져 대외 정책에 실패. 강화도로 도주하려다 남한산성에 발목잡힌 인조...
    그 와중에 끌려가고 도륙당한 백성들의 피폐한 삶..그리고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않고 그 와중에도 결국 자기 뱃속을 차리던 지배층...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기술을 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두서없이 몇글자 주져렸지만 과거 잘못 되었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좋았던 일로 위안만을 삼으려 한다면 같은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질문 2014/01/08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의 요지는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요지 파악을 조금 더 하셨다면 왜 좋은 면들을 기준으로 글이 쓰였는가 아실 듯 한데 너무 자기 주장에 휩싸여 계신 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잘못 되었던 것들에 대한 반성은 필수입니다. 당연한 얘기죠, 그걸 모르고 글을 썼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님과 같은 생각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배우고 배우고 좀 더 배운, 어느정도 지식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구요.
      다만, 우리가 이루어낸 좋은 면의 FACT, 단순히 좋아보이려는 자랑질이 아닌 FACT정도는 알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닌 가 싶습니다. 위의 몇 댓글처럼, 이렇게 일구어 낸 것들이 당연히 우리 조상들뿐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들을 후세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가 다를 뿐이겠죠.
      적어도 '사실' 우리 역사가 가진 좋은 면모를 가지고 부풀리지만 않는다면, 그 정도 자부심과 믿음, 그리고 자긍심을 갖는것이 나쁜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인터넷을 보다보면, 오히려 우리가 가진 역사에 대해 비판이 많으며, 혹시라도 누군가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면을 올려놓자면, 그것조차 한낱 자랑질로 치부하며 물어뜯기가 일쑤입니다. 우리조차 우리 역사의 안좋은 면만을 바라보며 반성만을 얘기한다면,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면들은 어찌 알고, 또 어찌 알릴 수 있겠습니까.
      다른 어느 나라에 알리고 뿌듯해 하자는 취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실' 이라면, 부정적인면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에 대한 뚜렷한 '인식' 과 '자긍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이 또한 정말 필요한 글이며 알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조금 예의에 어긋나게 이야기 했다면, 정정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제 생각이나 의견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 또한 찝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3. 김용성 2014/01/08 0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민족이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현 시대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쉽습니다.

  24. 행인2 2014/01/0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역사에는밝은면도,어두운면도있기마련이지요.억사공부를좀더해보고싶단생각이 ..불끈!

  25. BlogIcon 역사인식 2014/01/08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로 사회일반의 무지와 정체성을 일깨워준 훌륭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왈가왈부하기보다 겸허한 자세로 선조들의 업적을 되새기고 미흡한 점이 있다면 뼈저리게 반성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역사를 거울삼아 교훈을 얻지못하면 개인이나 국가나 미래가 없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키워드는 온고이지신하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26. 이게누고 2014/01/08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글이네요...

  27. 질문 2014/01/08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우리것의 '사실'조차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들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국가들에게 꼭 무언가 알리고 자랑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루어낸 것들에 대해 뚜렷이 알고, 그 권리를 갖는 것은 나쁜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생활하다보면, 부족한 역사지식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쉽게 왜곡된(혹은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일본, 중국과 함께 얽힌 역사라면 그 부분이 더 클 수밖에 없구요. 거기서 더 큰 차이는 이미 다른 유럽국가의 친구들 대다수는 일본이나 중국이 주장하는 역사(한국과 연결된)를 가정 사실로 알고 있다는 거죠.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으나, 정말 잘못된 '사실'이라면, 적어도 바로 세우려는 노력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누군가는, '두유노우김치?' 라는 말을 하며, '뭣도 없는 역사가지고 거짓말좀 하지말고, 자랑질좀 그만해라. 우리 역사가 정말 대단하면 그들이 알아서 알 것인데, 우리끼리 유난 떠는거 보면 손가락 오그라든다' 라며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궁금한건, 우리도 자긍심은 물론이며, 잘 알지도 못하는 역사를, 그 누가 먼저 와서 알려하고 바로 세우려 하겠는가 입니다.

    적어도 자랑질이 아니라, 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면, 혹은 조금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한번쯤 내세워 보는 글들이라면, 저는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른 반대되는 의견들 또한 계속해서 언급 될 수 있으며, 그 것들은 그 글을 보는이로 하여금, 각자 좀 더 우리 역사에 대해 찾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기간동안 해외에서 유럽이나 아시아 친구들을 만나며 이야기하고 느꼈던 것들은, 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 그에 따른 의견과 지식들 또한 뚜렷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또한 분명 잘못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부족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 친구들의 의견과 지식이 맞고 그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적어도 그만큼의 관심을 그 친구들은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그렇지 못하다고 단정짓는 것이 아닌, 조금 더 우리것에 대해 좋은 면들 또한 바라보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이었구요.

  28. 학생 2014/01/09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is is a great informational post. I'm glad something like this is up for us to see. Our country has been so negative about ourselves; I think we also need to point out the positive parts for us to learn from them. 너무 저희 자신의 나라를 비판을 많이하는거 같아요. 이런 글이 있는 목적은 긍정적인 면에서 배울깨 더 많아서인거 같네요.

  29. 하늘바다 2014/01/09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중요성이 여기에 있네요.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해요.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럽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30. BlogIcon 제이슨78 2014/01/10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장난 아니군요

  31. 유한봉 2014/01/10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한번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윗글에 연변은 연경의 오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32. 달봉이 2014/01/10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것을 확신으로 만들어준 좋은 글 입니다..

    특히 세종대왕님의 백성과 신하의 의견을 수렴하신 부분리 더욱 가슴에 와 닿습키다

  33. 김강형 2014/01/12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선 시대 과학 기술이 이렇게 띠ㅜ어났기 때문에 고가의 합금원소없이도 녹나지 않는 쇠를 만들어 갑옷에 적용했고 신라시대 종은 그렇게 가는 막대로 수톤이 되는 종의 무게와 충격을 견뎌냈습니다

  34. 아이 2014/06/03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대해서 다시한번 제대로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이나라의 역사인데도 모르는게 이렇게 많았다는게 조금은 창피 하기도 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도 역사에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

  35. 루키베르 2014/06/12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역사 정보 고맙습니다. 저도 단순한 역사교육만을 받아왔기에 우리나라의 이러한 훌륭한 역사가 있다는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앞으로 후세에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이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문제가 심각하다는걸 다시금 인식하게 되네요.

    글쓴이의 본문 글중에 좀 신경쓰이는게 우리나라 주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사건을 '한일합방' 이라고 쓰셨는데 이는 일제 및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행동과 사건을 미화하기위해 그리 불렀습니다.
    식민지화를 근대화 전달로 미화하는 우리나라의 친일기득권세력들이 자주 이용하는 말들 중 하나이고요.
    따라서 국권을 상실한 치욕적인 날이니 그 치욕적인 사건을 잊지않고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경술국치(庚戌國恥)' 또는 '일제병탄(日帝倂呑)'이라고 해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라고 불러야 하는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됩니다.

  36. BlogIcon 꿈꾸리 2014/06/28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님들 덕분에 어깨에 힘 들어가는데요? 모르고 있더 이런 이야기 정말 좋았습니다.더더욱 자긍심 갖고 살아야겠어요

  37. 흑집사 2014/07/0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시대에 잘못한게 없다가 아니라. 일제시대의 잘못된 민족사관으로 우리 역사가 가지는 장점은 전부 묻히고 단점만 부각되는 것이 안타까워 이런 글을 정리 하셨다고 생각됩니다.

    다들 왜 나쁜 점만 그렇게 끄집어 내면서 스스로를 끌어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못한건 반성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고, 잘한 것은 본받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역사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다짜고짜 장점만 늘어 놨다고 나무라는 분들이 안타깝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진 분이 있다는 것에 반가웠고, 다시 한 번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38. BlogIcon 지나가다 2014/08/19 0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출처 밝히고 블로그로 퍼갑니다^^ 혹시 안되면 말씀해주세요. 바로 내리겠습니다.

  39. ddd 2014/10/3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씩 와서 읽어보고 갑니다. 언제봐도 좋은글이에요.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1년후 5년후 10년후 다시 돌이켜보고 싶은 마음에 남기는 글. 그리고 낙장불입의 세계인 인터넷인만큼 나중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보아도 외면할 수 없으리라.

(그러고보니 작년과는 사뭇 다른 상태임을 느끼게 해주는 글: 2011년을 회고하며, 2012년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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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12년이라는 한 해에게 작별을 고해야할 시간이다. 기쁜 사람, 슬픈 사람,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너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시간이 가고, 모두들 기뻤던, 아쉽던 간에 떠나가는 해에 손을 흔들어줄 시간이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울컥)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무척 다사다난 했던 한 해였던만큼이나 속풀이를 많이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다가올 새해를 위하여 가슴저린 이야기 보따리는 저기 구석진 창고에 할아버지 즈음하여 다시 먼지털며 열어볼 마음으로 치워둘 때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하여 참 많이 배우고, 느끼고, 그리고 가치관이 무척 많이 혼란스러워진 한 해였다. 남자 나이 서른이면 가치관이 정립된다고 하던데, 난 아직 나이를 한 참 못먹었나보다. 남들보다 늦게 사회화가 되어서 경청, 공감이나 배려 같은 개념도 근래에 들어서야 머리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익지 않은 벼는 고개를 숙이면 빛을 받지 못해 먼저 죽는다는 개똥 철학으로 할소리 안 할소리 다 해가며 그때 그때 생각들을 입으로 글로 싸지르는게 습관이 되었는데, 어느덧 사람들이 나에게서 기대하는 모습은 고개 익은 벼의 모습인건가 싶어, 아직도 무척이나 성기고 거친 내 사람으로서의 그릇이 벌써 성장을 멈추어야 하나 싶어 못내 아쉬움이 크다.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상대방을 경험도 안해본 사람들이 쉽게 상처를 주고 헐 뜯는 것도 아직은 잘 이해하기 힘들고 (특히 요즘 대선을 보며 많이 느낀다), 비즈니스라는 이해관계의 문맥 속에서는 동일한 사람이라도 언제든 신의, 도의를 외면하는게 딱히 드문 경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안 좋게 바뀌어가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사업이라는게 단순히 목표하고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 가장 극심하게 휘몰아치는, 그 통제할 수 없는 폭풍을 인내하고 때로는 내가 그토록 못견뎌하는 시간의 시험 속에 묵묵히 버텨내야하는 일이 수반되는 것임을 알았더라면 진작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얼떨결에 발을 들인 이러한 길이 자신의 소명임을 받아들이고, 죽는 날까지 부족한 점이 더 많은 사람으로 살아가겠지만, 살아 생전 조금이나마 세상에 더 나은 일을 하다 가는게 그나마 이 광활한 우주의 미천한 존재의 짧디 짧은 생속에서, 나라는 존재, 그리고 우리라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는 점에는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내년에는 부족한 점이 한 가지 줄어들고, 강점이 조금 더 강해지는 그러한 해가 되면 좋겠다. 아직 모를 누군가에게 조금 더 미움 받게 되더라도 이를 잘 견뎌내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포용하고, 조금 더 인내하는 한 해가 되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는데, 이제 수신(修身)을 시작했다.

ps. 가훈하니 예전에 올린 우에스기 겐신(上杉 謙信)의 가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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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숙현 2013/01/02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년 1월 2일, 오늘은....

    "성공하려변 참아야 한다.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라.
    인내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 한다.

    복은 내 스스로 쌓는 것이다.
    듣기 싫은 말이 있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도 피해가지 마라.
    어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내가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아는 사람이냐에 있다."
    이런 말씀이 참 좋습니다.

  2. 최숙현 2013/01/03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톱니바퀴의 하나다.
    내가 빠지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이왕 그 자리에 있다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잠깐, 아주 잠깐 나를 필요로 하고 기억해 주지만,
    나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주지 않는다.
    세상은 실은, 나를 그렇게 중히 여기지 않는다.
    왜냐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한 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한 마음만이,그 사람의 향기로서, 다른 사람에게 기억될 뿐이다.

  3. BlogIcon 김동신(dotty) 2013/01/09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변분들의 조언을 따라 관련 댓글은 삭제하였습니다.

대기업병이라는 게 있다. 어디서 시작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시 되는 현상은 꽤나 보편적이어서 누구나 들으면 '아하!'하게 되는 그런 증상들을 모아서 대기업병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매일경제에서 꽤 잘 정리한 글이 있어서 그 중 TOP 10 징후를 담아와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운이 좋게도 사회생활 초년 시절에 문닫는 조직을 경험해보았다. 다행히 워낙 어리고 월 소비라고 해봤자 식대랑 교통비 밖에 없던 시절이라 큰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그때 조직이 100명이 넘는 규모에서 10명 남짓한 조직으로 까지 변해가는 모습을 옆에서 매우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경영에 대한 생각, 조직의 문화와 인재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병이라는게 이름과 달리 중소기업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게 함정이다. 사람을 잘 못 뽑거나 조직 문화가 망가지면 20명만 되도 걸릴 수 있고, 반대로 잘 관리만 되면 1,000명 규모에서도 비교적 '덜' 걸릴 수 있는 병인 듯 하다. 조직이 커지면서 어느 정도의 징후는 나타나겠지만, 결국 경영자, 그리고 나아가 조직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간관리자 층이 잘 받쳐주면 손쓸 수 없는 상황까지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해본 조직들에서 대기업병이 있다는 걸 느끼기 쉬운 증상들은 이렇다. 사람들이 일단 책임을 안 지려고 하고, 일을 할 때도 잘못됐을 때 욕을 안먹을 수 있고 남에게 전가하기 쉽게 일을 짠다. 그리고 뭔가 사소한 일에 대하여도 일일이 확인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도 비일비재해진다. 권한의 이양이 되질 않아서 사소한 건에 대하여도 윗선의 눈치를 보며, 관리부서의 목소리가 커져간다. 그리고 중간관리자들은 전형적으로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유해지고, 약한 사람 앞에서는 큰 소리치며 권위를 세우는데(고성불패라는 말을 나도 처음 배웠다), 이러다보면 팀원들의 불만은 위로 전달이 안되고, 조직의 손과 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곪기 시작한다. 이러다보니 실무진 레벨에서의 몰입도가 떨어져서 일이 서서히 안되기 시작하고, 자진해서 하던 야근도 갑자기 칼퇴로 바뀌어간다. (칼퇴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야근을 하던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칼퇴로 변한다는 변화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회사 내에는 이렇다할 성과도 없는데 승진과 강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면서 조직에는 파벌이 생겨나고,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상호간에 험담을 쉽게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 보다도 일 외적인 일에 사람들이 시간과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끼리의 개운한 기분의 맥주 한잔 보다는, 삼삼오오 파벌끼리 모여서 서로가 아직 적이 아니고 같은 편임을 확인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한가? 내가 속한 조직이 그런가? 축하드린다. 대기업병에 걸린 것이다.

이러다보면 인재들의 이탈이 빈번해지는데, 주로 자유도가 높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나간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능력과 인맥이 출중하여 좋은 조건으로 오라는 곳이 많거나, 아니면 젊어서 금전적 부담이 적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대기업병에 걸린 사람들, 혹은 그런 대기업병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리고 능력은 있으나 자유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주로 이런 고능력 저자유도 유형의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거나, 커리어 상의 중요한 타이밍이거나, 아니면 조직내 남아있는 다른 자유도가 낮지만 괜찮은 사람들에 대한 관계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보다 좋은 조직에서 신나게 일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크기 때문에 결국은 반드시 나가게 된다.

내가 경험했던 문닫은 조직에서의 모습이 이러했다. 배울게 많던, 좋은 분들이 먼저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떠난 사람들이 조직을 걱정하며 경계했던 암세포들은 정작 조직에 남아서 큰 소리치며, 자신을 견제할 사람들이 사라져가자 점점 득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그게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가라앉히게 한다는 걸 잊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가 배가 가라앉기 직전에 부랴부랴 뛰어내린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외친다.

Netflix가 요즘 힘든 모습을 보이긴 하나, 한때 좋은 기업 문화로 무척 유명해진 사례(이건 경영자라면 필독)가 있다. 여기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 조직이 커지면서 어떻게 뛰어난 인재들이 먼저 조직을 버리기 시작하는가에 대한 좋은 설명이 있고, 그리고 나서 그걸 막기 위하여 어떻게 조직 문화를 관리해야하는 가에 대한 좋은 처방들이 있다.

분명한건 조직이 크던 작던 대기업병이 걸린다는 것이고, 그걸 막기 위하여는 결국 경영진이 인재 경영과 조직 문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의 경영 환경에서 인재 경영의 중요성은 점점 그 위상이 높아져가는데, 아직 본인이 속한 조직의 문화나 마인드가 그러한 시대적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크나큰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McKinsey에서 말하기를, "Change Management(변화 경영)"의 핵심은 "Change the management(경영진의 변화 혹은 교체의 중의적 의미)"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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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bablogger 2012/12/03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에 제가 만난 어떤 분은 너랑 같이 일한 팀원들이 너가 회사 차려서 나간다면 같이 나간다고 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판단해보라고 하시더군요. ownership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참 소름돋는 순간이었습니다.

  2. BlogIcon Rochic 2012/12/03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연히 검색하다 블로그 글을 읽었는데요. 감탄 하면서 읽었습니다ㅜㅜ 전 아직 어리구 사업가도 아니지만 조직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도 하구요.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용ㅋㅋ

  3. 최숙현 2013/01/02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동신님이 올린 글은, 대학생때, 병역으로 근무하던 한 회사의 '패인' 요인을 직접 경험으로 쓴 것이네요. 누구든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 내게 촛점이 맞춰진 게 아닌가, 하겠지만....
    아쉽지요.
    나의 보는 시야, 받아 들이는 시야, 마음의 시야등.. 많이 넓어져야 해요.
    어떤 말이든, 어떤 상황이든,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로 받아 들이면,
    좋은 간접 경험 하나를 또 내가 갖는 거가 되지요.
    수고 하세요, 사랑합니다.
    세상은, 해도 좋지만, 구름도 필요하고,우산도 있어야 좋답니다용.

  4. 김태경 2013/12/30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직장생활 10년차에 접어들고, 자의반타의반으로 이직이 많았는데 참 공감가는 글이네요. 대기업병이라고 단정할수는 없습니다. 10여명 안밖의 적은 조직에서도 일어나는 증상입니다. 책임 떠넘기일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경영자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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