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나 정치, 혹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관리를 하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리더쉽이라는 것에 대하여 한 두번쯤 고민을 해보게 된다.
과연 리더쉽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사람들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가. 사람은 어떠한 요소에 리드되는가. 같은 정답없는 질문을 던지고 앞서 권장안을 제시한 선인들의 지혜를 빌리기도 한다.
앞서 세상을 떠나신 피터 드러커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CEO의 8가지 덕목이라고 일컬으며 아래에 대한 실천을 장려하였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들은 "무엇이 기업을 위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들은 계획표에 따라 행동한다.
그들은 기꺼이 책임을 떠맡고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마련한다.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생산적인 미팅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들은 항상 '우리'라고 말하고 생각한다.
로마제국을 통치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지혜(wisdom), 정의감(justice), 강인성(fortitude), 절제력(temperance)를 리더의 네 가지 덕목으로 꼽았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의식이라고 일컫는 상당부분이 무의식들의 결합적 집합, 혹은 창발적 현상이라고 알려져있다.
또한, 직관이라고 부르는 것도 초현실적 감이 아닌 두뇌 속의 빌딩 블럭들의 관계에 대한 통찰(문병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논란의 여지는 과연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재하는 가이다.
물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의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마치 자기 자신의 사유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과도 유사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여기서 분명히 주의할 점은 무의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거나 자신의 제어의 범위 밖에 있다고 단정짓는 것을 피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국 신경 세포 단위의 생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세포 단위의 결합이 병렬적으로 일어날 때 비선형 역학이 정적/부적 피드백에 의하여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하여 두뇌 속은 일련의 전기적, 화학적 폭풍을 맞이하게 된다. 다행스럽게 두뇌가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폭풍은 한없이 증폭되지 않고 어느 시점에서 가라앉게 된다. 이때 자극된 일련의 신경 세포들의 결합이 특정 개념을 연상시킨다던가(priming effect) 하는데, 이러한 것들의 결합이 자기 회귀적 사고를 하는 인간에게 하나의 유의미한 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이로 인하여 의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식은 무의식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직 확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직관적으로 '그러할 수 있다'라는 판단을 내릴 뿐이다.
무의식이 의식에 선행한다는 실험적 사례로는 사람에게 두 개의 버튼을 주고 그때 그때 신호가 들리면 임의로 아무 버튼이나 원하는대로 의식적으로 판단하여 누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신경의 반응과 뇌의 반응을 측정하여 보니 정작 먼저 움직인 것은 그의 사고를 관장하는 전두연합령 같은 곳이 아니라 그의 운동 신경계였던 것이다. 이미 몸이 먼저 선택을 내리고 그 사람의 사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라는 가설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을 읽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거나 삶을 계획하고 고차원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행동을 반복하곤 한다. 이것은 의식의 의지일까 아니면 무의식적 문제 해결능력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적응력의 총 결합의 산물일까.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통제는 환상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 중 마이클 포터 교수와 연구진들이 진행한 연구 중 'CEO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깨닫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통제권과 리딩에 대한 내용인데, 리드를 하게 된 입장에서 실제로 리드를 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놓이게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리딩이란 존재하는가? 앞에서 본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되새겨보면 리더쉽이란 의식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주변에서 리더쉽이 뛰어난 사람들을 본다. 하지만 개인 단위의 리더쉽은 개념적으로는 성립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자극과 반응의 영향력 차원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개인 대 개인, 혹은 개인 대 소집단의 리더쉽이 세포 대 세포의 셀 커뮤니케이션이라면 개인 대 거대 집단, 혹은 군중에서의 리더쉽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것이 리더쉽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그러한 매개체를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인가. 자신들이 당시에 바라고 있는 염원이나 생각을 대신 전달할 통로를 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지 않고 있는 것을 강요하는 리더에 대하여는 반발을 하거나 결국 새로운 리더를 세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멍석 깔아 놓은 곳에 앉는 것이 리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리더쉽이라면 자신을 위한 멍석을 잘 찾아나서는게 리더쉽의 본질이 아닌가.
사실 본인의 생각은 그러한 멍석을 찾아나가는 과정도 능동적으로 멍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세포도 자기가 보다 많은 양분을 섭취하고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 몸부림 속에서 전체를 구성하고 살려가는 것 처럼, 사람도 자신을 향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설 곳을 굳건히 하고 그러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멍석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