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의 팜드라이브 전경
오늘은 예전에 파프리카랩에서 인턴을 하다가 스탠포드로 유학온 후배랑 그의 친구들을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창업에 관심있는 친구들도 있고 뭔가 하려고 하는 그 열의가 대단했다. 그런데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학교 전체적으로 (특히 CS - Computer Science나 GSB/MBA쪽은)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상당한 듯 하다. 창업과 관련된 수업이 정말 다양하게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현장에서 유명한 기업가들이 멘토로 참여를 한다. 진행하고 있는 교수 중에도 속칭 “빌리어네어”도 있다.
방학 중 인턴도 당연히 쿨한 스타트업이 아니면 쿨한, 그렇지만 약간은 커진 기업들에서 하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뭔가 좀 할법하면 수업에 참여한 멘토들이 바람을 잡는다. 수업 프로젝트 팀들 중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야야, 돈 걱정하지말고 한번해봐 내가 지원/투자해줄게”라는 식이다. 학생들도 조금이라도 뭔가 가시적이다 싶으면 바로 VC에게 pitch를 하러 다닌다. 심지어는 유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서 별것 없어보이는 애들도 너도나도 스타트업을 외치고 다닐 정도라고 하니 부작용을 걱정해야할 판이다.
세계적인 디자인기업인 IDEO를 창업한 David Kelly의 집에 놀러도 가본다. 이 사람도 자동차 매니아라서 차고가 엄청나게 많다보니 투어시켜주는데 그 안에 포르셰와 클래시컬한 것부터 최신식에 이르는 다양한 차들이 꽉꽉차있다고 한다. 지금 수업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후배들의 멘토는 전직 Pixar CTO라고 한다. 같이 참여하는 다른 멘토 중에도 이미 성공해서 한번 exit를 하고는 두 번째 기업에서도 자신의 지분 가치만 수백억원에 이르는 규모의 기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개인자산이 100억원이 넘는 사람들도 계속 창업을 새로 또 하고, 그러면서도 어께에 힘주고 다는게 아니라 면도도 안하고 츄리닝 바람으로 바삐 다닌다.
자리가 없어서 앉기 힘든 칼라피아 카페. 업계 유명인들이 많이 온다.
이렇게 후배들과 스타벅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어디서 본 듯한 아저씨가 와서 앉는다. 헐렁한 청바지에 운동화, 방금 전에 회사에서 나와서 커피한잔 하러 온 듯한 분위기의 아저씨는 아이패드를 꺼내서 뭔가 가지고 노는 듯 하다. 그는 현재 잡스의 공석을 대신하고 있는 애플의 COO이자 CEO대리인 팀쿡(Tim Cook)이다. 주변 손님들도 별로 신경도 안쓰는 듯 하고, 그나마 커피를 찾아갈 때 어떤 아가씨가 알아봤는지 가볍게 인사를 하는 정도. 만약 용기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당장 가서 elevator pitch라도 하고 싶을 테지. (어쩌면 그는 아이패드2를 가지고 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중견기업의 사장만해도 (어떤이유이건간에) 이렇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동네 카페 주차장에는 시커먼 에쿠스나 제너시스가 아니라 아우디 R8 V10이나 포르셰 카레라 4S 등이 즐비하다. 하지만 아무도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질투와 시기로 바라보는 시선도 없다. 그나저나 팀쿡 아저씨의 차는 BMW 650i가 맞는 걸까? 일단 주차장에 "의전용" 차량은 없었다.
물론 환경만 좋으냐? 그런 것은 아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남다른 끈기와 근성, 그리고 창의성 및 실행력도 평균적으로 매우 높아 보인다. 후배도 간밤에 과 프로젝트로 밤을 꼴딱 새우고 (흔히들 하는 것처럼 밤새고 아침에 자서 점심경에 일어나는게 아니라, 정말 안 잔다) 아침에 마이크로소프트에 면접을 보러갔다가 오자마자 또 다른 과제 하나를 후다닥 마무리하고 바로 공항으로 나를 마중나와서, 하루 종일 나와 이야기도 하고 다른 기업가 친구도 소개받아 만나고, 또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친구/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밤에 또 학교로 프로젝트를 하러 가서, 새벽 6시가 된 지금에도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후배가 참고로 서울대학교 전기과에서는 거의 과탑을 하던 친구인데, 실력이나 성격이나 유머감각이나 정말 떨어지는게 없는 아이다. 그런데 여기와서는 (이 친구가 겸손을 떤 것도 있겠지만) ‘정말 잘했다’ 싶으면 평균 정도고, 이건 ‘진짜 모두를 압도할만큼 적수가 없다’싶으면 평균보다 조금 높은 정도가 된다고 한다. 특히 CS쪽은 백인들이 많은데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친구가 “정말 잘한다”라고 하면 어떤 사람일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 (아쉬운 점은 기계나 다른 전공쪽은 한국인이 좀 있는 편인데 CS처럼 실리콘밸리의 "꽃"에 해당하는 과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점.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미국의 핫한 스타트업들에는 중국인이나 인도인은 많은 반면 한국인이 거의 없다고 한다. 참 아쉽다.)
이 후배만이 아니라 후배의 룸메이트도 방금 전까지 같은 식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도 계속 밖에 있다가 새벽 3시 즈음에 집에 와서 씻고는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85년생인 이 친구도 이미 이전에 창업 co-founder의 경험이 있고, 지금 또 새로운 스타트업을 준비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이런 게 예외적인 경우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언제든 이렇게 할 수 있고, 괜시리 자기 밤샘했다고 생색낼것 없이 당연히 해야할 때는 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널리 퍼져있는 듯 하다. 납기일이 다가와서 압박을 하는 클라이언트가 시켜서도 아니고, 상사가 지켜보고 있어서도 아니다. 내적동기만으로도 고도의 집중력과 책임감, 그리고 자기관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학구파”와 “창업파”처럼 성향이 나뉘기도 한지만, 일단 CS 졸업생의 20%는 창업을 할 정도고 또 30%정도는 핫한 스타트업에 합류할 정도라고 하니 할말이 없다.
아마 세계에서 지적능력의 평균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일테지만, 의외로 성격들도 시원시원하고 좋다. 긍정적이고 눈빛이 빛난다. 젠장. 이건 뭐 정말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좋은 환경에서 이렇게 뛰어난 아이들이 무한한 기회 앞에서 끊임없는 자극과 고민, 그리고 실행을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국가차원에서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Nvidia창업자 Huang이 기부하여 지어진 공학관. 스탠포드의 900만평이 넘는 부지에는 이런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참고로 캠퍼스가 좀 크다고 알려진 서울대가 50만평 정도라고 한다)
아마도 창업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미국에서 할 정도의 여력이 되는 사람이라면 실리콘 밸리와 스탠포드, 바로 이곳보다 나은 환경이 아직은 세상에 없을 듯 하다. 한국이 이렇게 되려면 일단 성공한 기업가들이 발벗고 나서야하고, (최근 지어진 스탠포드 R&D센터도 Nvidia창업자의 기부로 지어졌다) 적극적 멘토링과 엔젤투자 (그리고 정부차원에서는 엔젤투자 세제혜택), 그리고 정부와 VC 및 부모와 주변 친구들(중요하다)의 열린 마음(솔직히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학교들도 어설프게 하지말고 제대로 기업들과 협업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상업화하는데 노력해야할 것이다. 개선의 여지가 많고 할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애가 똑똑한데 공부를 안해서..” 같은 핑계는 더이상 댈 것 없다. 똑똑하면 공부를 하면 되는거고, 공부를 안하면 안 똑똑하니만 못하다. 이제 우리도 대한민국의 잠재력을 잠재력으로만 놔둘게 아니라 실천해서 현실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대한민국의 기업가들이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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