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 중국 기업의 초청 파티에 다녀왔다. 우아한 공간에서 다양하게 짜여진 이벤트와 산해진미의 요리들은 이 기업의 규모와 한국 시장에서의,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듯 했다. 시간이 흘러 중국에서 온 귀빈들이 인사를 하고, 파트너사인 한국 기업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순서가 왔다.
이 중국 회사는 현재 아시아의 웹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단 웹 뿐만이 아니라 게임과 인터넷 망에 이르기까지 그 사업영역이 포진되어있다. 이른바 인프라이자 플랫폼을 제공하는 거대 기업이다. 사실상 규모만으로는 세계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수 많은 개발사들이 이 회사가 짠 '판'위에 올라가 그들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회사가 주는 '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고 있는 듯 했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징가(Zynga)라는 회사가 한국 게임 업계 및 투자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2007년 7월에 설리된 이 회사는 투자자 중 한 곳인 Kleiner Perkins (KPCB)의 John Doerr가 말하기를 수십년의 투자 활동 중 가장 빨리 성장하는 회사라고 할 정도로 경이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가 생긴지 6개월만에 들어간 첫 VC 투자인 Series-A의 금액만 해도 한화로 1백억원 상당이었을 정도로 시작부터 굵게 시장에 진출하였다. 지난 3년 간의 누적 투자액이 $219M(환율을 고려안하고 약 2천2백억원)에 달한다. 물론 이 회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PlayFish도 창업 2년이 약간 넘은 상황에서 EA에 묵직한 규모로 인수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거액의 투자자금을 받은 Playdom은 요즘 Zynga와 함께 1주일에 1개씩 소셜 게임 회사를 인수하며 쇼핑 시즌을 즐기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소셜 게임 시장에 '마피아워'와 '텍사스 홀덤 포커'가 꽃을 피우고 있을 때 (당시에는 '팜빌'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가 가진 역량과 시장의 fit이 맞고 때가 적절하다는 생각에 소셜 게임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2009년 초여름 즈음 시작하여 10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처녀작이자 소셜 RPG인 '해적의 유산'을 Facebook 상에서 베타 테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1주일이 지난 현재 1만명 정도의 유저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하고 있으며, 조만간 본격적인 마케팅과 상용화를 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글로벌한 시장에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의 문제로 바뀌어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회사들이 빛과 같은 속도로 성장하고 경쟁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강건너 불구경인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다.
2009년 초에 투자자들을 모아서 '소셜 게임'이라는 시장에 대하여 처음 이야기를 하였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1년이 훌쩍 넘은 요즘 들리는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 듯 하다. 어디 투자할만한 소셜 게임 회사가 없는지 문의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온다.
근래에 들어 주변에서 참 많은 분들이 창업을 시작하고 있다. 소셜게임과 스마트폰(엄밀히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창업 열기가 예전 PC방 황금기와 치킨집 붐마냥 들썩이고 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닷컴버블 때 못지 않게 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시장에 투자 자금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싸이월드가 글로벌화에 늦은 것처럼, 모바일 시장을 선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세계 시장에 한참뒤처지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또 하나의 시장이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음을 여전히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이미 검증된 모델'을 '한국의 규모에 맞게' 재현하여 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자와 기업가, 어디에도 한국이 세계의 무대에서 사라져가고 있음을 걱정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도전하려는 분위기는 없는 듯 하다. 세계에서는 전쟁이 나서 미국에서는 최첨단 무기와 무인 비행기를 타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칼빈과 M16만 손에 쥐어주고 글로벌 시장으로 내던지려는 투자자나, 어차피 가도 싸우지 못하겠으니 세계 GDP의 2% 미만의 한국이라는 곳에서 서로 박터지게 싸우겠다는 초고학력의 인재들이나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님의 자서전을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어떻게하면 파프리카랩이 세계 시장에서 유의미한 출발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남이 짜 놓은 판에 올라서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짜 놓은 판에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태인이 전세계 금융의 신경망을 구성하 듯, 우리가 전세계 IT와 소프트웨어의 신경망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글은 역시 달라', '애플은 역시 달라', '하지만 우리는 안되'와 같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정상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여러가지를 풀어나가야 한다. 먼저 '한국 시장을 나눠먹자'가 아니라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그 똑똑한 인재들이 또 하나의 판타지풍 MMORPG를 만들겠다라던가 밀리터리 FPS를 만들겠다가 아니라, 이 글로벌한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콘텐트, 차별화된 콘텐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필요하면 교육하고, 힘을 합치도록 모아야 한다. 자연에서도 에너지가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쓸모가 없어지지만 한 곳에 모아 엔트로피를 낮추면 비약적으로 유용하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크고 작은 꿈을 한데 모아, 글로벌한 시장에서의 국가적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힘을 합치면 Zynga와 같은 회사를 만들 수도, 그리고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비전의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게임을 흉내내서 만드는 것도 좋다. 중국 게임을 번역해서 한국에 들여와 운영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인가가 명확해야 한다. 시장이 좋을 때 얼른 해서 돈 좀 벌겠다는 마음 가짐으로는 IMF 외환위기 때 한국 기업들이 풍지박산이 나듯, 순식간에 모래알처럼 휩쓸려버릴 각오를 해야한다.
그리고 자금을 모아야 한다. '한국에서 해볼만한' 자금이 아니라, 글로벌한 시장에서 Zynga와 경쟁할 수 있을 만한 자금, 나아가 중국과 아시아를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자금이 모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기업들을 한 곳에 모아 상호 호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winning spiral을 만들어야 한다. 더이상 싸게싸게 인력을 데려다가 적당히 남이 만든 것을 배껴서 한국에서 팔아보겠다거나 적당히 뭐 하나 만들어서 한번 실험해보자 정도의 마음 가짐은 곤란하다.
단기적으로 모방이 쉽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콘텐트와 기술에 투자를 해야한다. 곧 있으면 소셜 게임도 깊이와 폭이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사용되는 기술도 플래시만이 아닌 streaming 3D, HTML5 등으로 다변화 될 것이다. 모바일이나 IPTV와의 유무선 연동도 필연적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아우를 수 있는 가상 화폐 및 결제 수단의 통합과, 콘텐트를 엮어주고 상호 사용 및 구매 촉진을 해줄 수 있는 플랫폼의 등장도 머지 않았다.
'우리 이런 게임 한번 만들어 보고 있어요'로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더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개발사로 먹고는 살만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을 한 두개 잘 만들어서 적당히 돈도 벌고, 남들이 짜 놓은 판에 올라가서 운영하다가 그들이 주는 '상'을 받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한국이 중국과 인도와 같은 세력의 부상과 함께 글로벌 IT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될 것이다. 이제는 흩어진 인재와 자금을 모아 글로벌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국가적 노력을 해야할 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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