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편에 이르는 단편 연재물입니다. [1편, 2편, 3편]
#69 확인되지 않은 가설
평면은 건물의 조직적 논리를 설명한다. 단면은 감정적 경험을 구체화한다.
웹 기획을 하다보면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실행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아이디어와 머릿속에 그리는 화면만으로는 현실화 하기 힘들거나, 조직의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기에 부족한 경우가 있다. 파워포인트에 열심히 화면을 구성해보아도 느낌이 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럴때 유용한 것이 목업(mock-up)이다. 대충 "완성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하는 공감대를 사람들에게 심어줄 때 효과적이다. 웹사이트라면 기존에 익숙한 사이트의 구성요소를 캡쳐하여 콜라쥬형태로 오려붙여서 해볼 수도 있고, 조금더 정확한 느낌을 위해서라면 포토샵이나 HTML로 구성된, 주요 페이지들을 간단하게 구성해볼 수 있다.
아이디어와 기획을 논리의 영역에서 풀기만 하면, 실제 실행 단계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때 축을 달리하여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모습을 생생하게 감정적으로 와닿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제시한다면 비전과 방향을 서로 공유하고, 더 구체적이며 실행에 가까운 아이디어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73 평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두 가지 열쇠는 솔리드-보이드 관계 정립과 동선 해결에 있다.
설계의 개념을 잡는 차원에서 건물의 기본 기능부터 생각해보자. 화장실, 창고, 기계실, 엘리베이터실, 비상계단 등은 솔리드다. 기본 공간들은 주로 그룹으로 묶거나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보이드는 건물에서 넓은 프로그램 공간이다. 로비, 연구실, 예배실, 전시실, 도서실, 연회장, 체육관, 거실, 사무실, 제조실 등이다. 평면의 해결이란 기본 공간과 프로그램 공간이 현실적이고 만족스러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웹서비스에서의 기본 기능(solid)들은 무엇일까?
회원 가입(익명only 서비스가 아니라면), 로그인/로그아웃, 회원정보 수정, 이용자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도움말, FAQ, 사이트맵, 네비게이션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의 핵심을 구성하는 프로그램 공간(void)에 해당하는 게시판이나 개인 공간, 자료 공간, 참여의 도구 들이 있을 것이다.
결국 웹기획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목표에 맞게 이런 솔리드와 보이드사이의 관계를 잘 정립하고,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것이다.
#81 설계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작업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이 설계과정에 주도권이 없다고 생각한다.
설계과정은 구조적이고 조직적이지만 기계적인 과정은 아니다. 기계적 과정은 결과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적인 과정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정말 창조적이다"라고 할 때는 전체의 과정을 이끌 책임을 쥔 채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권위적인 통제 방식이 아닌 다소 느슨한 방법이 유용하다.
인내를 가지고 설계과정을 진행하라. 유명 건축가들이 난해해 보이는 단 하나의 영감에 의지해서 창조적 과정을 진행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하지 말라. 복잡한 건물의 설계를 앉은 자리에서 끝내겠다거나 일주일 만에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불확실함을 받아들여라. 설계과정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어도 괜찮다. 정상적인 감정이다. 한 번 내린 결정과 성급하게 결혼함으로써 걱정을 해소하려고 하지 말라. 설계상의 이혼은 추하다.
우리는 놀라울정도의 불안감에 떨며 산다. 자신이 현재 나아가고 있는 방향의 통제권을 잃었다고 괴로워한다. 심지어는 control freak이 되어가며 모든 것에 편집증적인 증세를 나타내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새롭게 CEO가 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당혹감이 "자신에게 통제권이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서 온다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니다.
기존에 없던 웹서비스, 혹은 자신이 경험해본적이 없는 웹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할 때 느껴지는 당혹감들 - "이게 제대로 되고 있는 건가?" "뭔가 빠진건 아닌가?" "아예 틀려먹은 거면 어쩌지?" "내가 혹시 전혀 생각치도 못한 더욱 중요한 것들이 산더미 같이 있는건 아닌가?" "과연 이 방향이 맞는 걸까?" 등 - 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발생할 (분명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는 가에 있다.
불확실성이 게임의 규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릴랙스하고 즐겨보자.
* Image courtesy of 0.618, reinvented, Ditb - Downinthe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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