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하나의 건축 공간이나 요소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그 특성을 실제로 존재하게 만든다.
두꺼운 느낌이 나는 벽을 만드려면 실제로 두껍게 하라.
높은 느낌이 나는 공간을 만들려면 실제로 높게 하라.
설계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설계초보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노련한 건축가는 미묘한 차이로 큰 효과를 만드는 방법을 안다.
마지막 문장에 포인트가 있다. 개발자를 위한 디자인 가이드 1편 - 반사광(Glassy) 버튼 만들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반사광의 느낌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가운데 두 색상 사이의 거리와 색상의 선택이라는 미묘한 차이에 있다. 돌이켜보면 단순한, 자신만의 이러한 숨겨진 수식을 발견하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도 필요하겠지만 처음에는 우선 의도를 명확하게 하는 훈련이 먼저다.
볼록해서 누름직한 버튼을 만들고 싶다면 다소 촌스러워보일지 몰라도 직접 그라데이션도 넣어보고, 그림자도 넣어보고, 엠보스(emboss) 효과도 넣어보고 해야한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그 의도가 명확하게 이해되도록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가다듬어야 한다. 이것이 수십번 수백번 반복되면서 자기만의 미묘한 노하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웹 기획이나 디자인에 있어서 자신의 숨겨진 의도를 누군가 발견해주기를 기대하면 안된다. 게임이나 easter egg(숨겨진 비밀) 같은 것을 기획한다면 잔재미 차원에서 이러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질이 충실하게 구현된 뒤에 따라오는 잔가지에 불과하다.
(Easter egg 이야기가 나와서 예를 들어보자면 구글 리더에서 왕년에 유명한 Konami 게임의 무적 코드(와 유사한): 위. 위, 아래, 아래, 좌, 우, 좌, 우, B, A 를 순서대로 입력하면 좌측 목록 부분에 닌자가 나타난다. 다시 하면 사라지고.. 얘내들 센스가..)
#45 앎의 세 단계
단순성: 어린 아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 갖고 있는 세계관으로, 자기 경험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접한 사실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복합성: 평범한 성인의 세계관이다. 자연과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알고 있으나 명확한 패턴이나 연결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학습된 단순성: 학습된 현실감각을 말한다. 복잡한 상태 속에서 명확한 패턴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기초로한다. 건축가는 수많은 고려사항이 혼재되어 있고 불분명한 가운데서 모든 것이 잘 정리된 건물을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패턴 인식은 건축가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나는 첫 번째 단계와 마지막 단계를 강조하고 싶다. 가장 위험한 것이 중간 단계이다.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를 때는 자만과 착각으로 용감할 뿐더러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설프게 현실 감각을 익힌 중간의 복합성 단계에 이르면, 대부분의 것들은 복잡하고 위험하며 불가능해보이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리고, 사고와 행동에 스스로 경계선을 긋게 된다.
초심자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보이지만, 전문가에게는 한계와 과거만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엄청난 의지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 단계를 넘어서서 도달한 학습된 단순성은 고민과 경험, 그리고 실행을 통한 체화와 지혜의 수준을 의미한다.
해외에서 새로 나오는 웹서비스들 중 성공하는 것들을 보면 상당수가 '비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이 평상시에 느끼던 문제나 호기심을 날카로운 관찰력(사실 본인들은 의식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을 듯 싶다)과 실행력을 통하여 서비스라는 형태로 담아내는 것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경우인데, 이는 사실상 단순성의 단계에 더 가깝다.
웹기획이 어려운 이유는, 학습된 단순성이 생긴 즈음에는, 그 학습을 이루었던 경험이 현재의 소비자의 니즈나 눈 높이, 혹은 미래에 더 이상 효과가 없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트렌드를 지켜보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본질적인 모습과 표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잘 분리해낼 필요가 있다. 하긴 말이야 쉽지..
#48 자신의 아이디어를 할머니가 이해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그 주제를 잘 모르는 것이다.
일부 건축가들, 교수들, 학생들은 인정과 존경을 받으려고 지나치게 복잡한(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 살마들은 신경 쓰지 말고 따라하지도 말라. 자기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라면 자기 지식을 사람들에게 일상용어로 전달하는 법도 알고 있다.
스토리보드 작업이나 영화 시나리오 작성 시에 보면 Substance와 Texture라는 것이 있다. 전자가 본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라면, 후자는 그 이야기의 전개를 옆에서 도와주는,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 하지만 본래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은 아닌 것들을 일컫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 의학 드라마에서 보면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위험한 순간들, 로맨스 등이 Substance라면, 인물들이 중간 중간에 읊는 전문 용어들 (사실 그 용어의 진위여부는 당장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청자에게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의사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배경 인물들은 Texture를 이룬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전달의 효율성과 정확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웹기획자 사이에는 RSS나 태깅, 트랙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즉각적이고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개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면 (사실 웹 기획자들은 서비스를 통하여 실제로 이렇게 해야 한다) 업계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쏙쏙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여야 할 것이다. 중간 중간에 살짝 살짝 전문용어(이럴때 jargon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를 넣어주면 '그럴싸해' 보일지는 모르게지만, 이는 사실 substance가 아니라 texture에 해당한다. '전문성'이라는 현실감은 주지만 실제로 내용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substance보다 texture가 많아진다면 듣는 사람은 혼란스럽고 이해도 또한 급격히 떨어진다. 생각해보자. 의학 미국드라마를 볼 때 하루 종일 의사 전문 용어만 나오고, 난해한 수술 장면만 계속 나오다가, 드문 드문 일상적인 대화가 나온다면 누가 보겠는가?
물론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로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이라면, 보여주는 것이 더욱 좋다. "Show, don't tell" 이라는 말도 있듯..
분명한 것은, 남들에게 설명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정확히 알고 있고, 무엇을 아직 잘 소화하지 못한 것인지 파악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웹 분야처럼 빨리 변하는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마다 잘 모르는 친구에게 설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Image courtesy of Georgio R., Babybluest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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