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에서
Pixar 전시회를 하고 있길래, 저번 주말에 B와 함께 다녀왔다.
Pixar 스튜디오의 지난 20년간의 작품들 - 토이스토리 시리즈, 벅스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디블스, 카, 라따뚜이, 월E 등 -을 만드는 과정의 중간 작업물들과 디자인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
전시회 아트워크 모음집과 유료 가이드북. 바로 구매.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파프리카랩의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다녀왔다. 책도 두 번 읽으면 처음에는 못본 내용을 알게되듯, 다시 방문한 전시회는 나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부 촬영은 금지 되어있기 때문에, 입구에 적혀있는 픽사의 창업자이자 CCO(Chief Creative Officer)인 존 라세터(John Lasseter)의 말과 함께, 아트워크 북 내부의 이미지들을 일부 소개하며, 경험했던 내용을 되밟아보고자 한다.
The art challenges the technology, and the technology inspires the art.
- John Lasseter -
픽사에 대한 도큐멘테리를 보면, 존 라세터가 디즈니에서 쫓겨나며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픽사를 일으키는 모습이 나오는데,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창조하고 산업을 이끌어가면서 강하게 느꼈던 것을 이 말로 담아냈다.
약간의 여담이지만, Doom과 Quake로 유명한 id Software의 천재 개발자인 John Carmack (얼래, 다 John이군. 으쓱~)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1인칭 슈팅(First Person Shooter)라는 장르를 창조하고 이끌어가면서, 일종의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자 예술을 만들어 냈는데, 이 과정에서 그래픽 하드웨어 제조 업체들이 많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3D 가속을 가능하게하는 칩셋을 개발해온 NVIDIA나 ATI 및 Voodoo(지금은 NVIDIA의 일부가 되어있음)는 새로운 3D 그래픽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이에 영감을 받은 카맥과 다른 3D 개발자들은 새로운 3D 세상을 다시 개척하였다.
Where it all began.
다시 픽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픽사는 1984년에 존 라세터가 조지 루카스의 특수 효과팀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는데, 1986년에 스티브 잡스에게 인수당하며 오늘날의 픽사의 모습의 기틀을 잡게 된다. 당시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적자를 내면서 운영되었는데, 1995년에 이르러서 세계 최초의 100%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토이 스토리"가 전세계에 개봉되면서 대성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수 많은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르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이제 전시회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전시회장에 들어가게 되면 가운데의 Welcome Zone을 지나, 우측으로 들어가게 되면 크게 캐릭터(Character), 스토리(Story), 세계와 컬러스크립트(World & Colorscripts)를 따라 둥글게 돌게 된다.
단 하나의 캐릭터를 제작하기 위하여도, 어마어마한 양의 프로토타입과 동작 변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는데,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개미로 만들어진 황금비? :)
목탄으로 그려진 니모를 찾아서의 악당들. 깊이가 느껴진다.
캐스트 우레탄 레진으로 제작된 수 많은 캐릭터 sculpture
캐릭터를 캐스트 우레탄 레진으로 제작하여 공간감과 느낌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두었는데, 여기위에 다시 메쉬(mesh)를 그려 모델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활용되는 듯 하다.
애니메이션에는 등장하지도 않을 부분까지 세세하게 기획하는 데에는 픽사 스튜디오의 철학이 뒷받침 하고 있다:
... Pixar artists believe that a character needs to have sufficient dimension to live beyond the frame of the film. ...
픽사의 아티스트들은 캐릭터들이 영화를 넘어선 세계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깊이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스토리 작업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스토리보드를 요구하는데, 픽사 스튜디오 내부의 벽면은 이런 스토리보드들로 가득 가득 차있다. 이러한 스토리보드에 성우의 목소리를 씌워서, 실제 애니메이션과 같은 타임프레임으로 pitch를 만드는데, 스케치와 간단한 렌더링이나 아트워크들의 조합인 이 스토리보드 애니메이션만 봐도 정말 재미가 있다.
토이스토리 초반부 장면 중 ...
여기서 go가 나오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배경에 대한 디테일도 상당한데, 예를 들어 니모를 찾아서를 만들 때는 실제로 아티스트들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바다 속의 모습, 동/식물의 느낌과 빛이 물속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하나 하나 스터디 하였다고 한다.
벅스라이프에 나오는 식물의 가지들에 대한 연구
그리고 스토리 장면 장면의 감정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색감에 대한 고민도 철저한데, 이를 컬러스크립트로 작성하여 아티스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있다.
인크레디블스의 장면별 컬러스크립트 가이드라인
중간에 잠깐 눈길을 끈 게 있었는데, 인크레디블스의 디자이너인 에드나 모드(Edna Mode)의 집의 스케치를 보면 ...
인크레디블스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의 집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Falling Water와 유사한 형상임을 알 수 있다:
Frank Lloyd Wright의 Falling Water
전시 중간 중간에 사이드로 단편 영화와 조스트로프(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작되었다고 한다)가 등장하며, 인터랙티브 키오스크(Interactive Kiosk)에서는 픽사의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한 풍부한 인터뷰/해설 자료가 담겨있다. 시간을 내서 꼭 살펴보자.
그리고 자체적으로도 상당한 작품성을 지닌 아트스케이프(Artscape)가 있는데, 작업물을 다시 디지털로 편집하여 3D 공간감을 살려낸 옴니버스형 쇼이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빈체어(bean chair)는 아이들이 독차지 하므로, 앉으려면 끝나는 타이밍에 바로 들어가거나, 한 번을 더 볼 때 노려야 한다.
픽사 스튜디오가 그리는 애니메이션 속의 세계에 대한 철학은 Believability를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 (전략) ...
A distillation of the real world is at the heart of the film. The audience believes in this imaginary world, though based on reality. There is a momentary suspension of disbelief on the part of the audience when they become aware of what they are witnessing on screen. We say to ourselves, "I know that fish cannot talk, but if the did, they would speak like this." If a film remains true to reality and successfully condenses the laws of the physical world, the audiences willingly use their imagination and participate wholeheartedly with the vision of the creators.
영화의 중심에는 현실 세계를 잘 선별하여 담아내는 것이 있다. 관객들은 현실에 근간을 두고서는 이 상상의 세계를 믿게 된다. 관객들은 화면을 통하여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을 의식하게 될 때, 불신이 사라지는 순간이 생겨난다. "나는 물고기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 할 수 있었다면 저렇게 말을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현실에 충실하고, 실세계의 법칙을 잘 응축해낸다면, 관객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기꺼이 활용하려 하며, 제작자들의 비전을 믿고 공감하게 된다.
올해 9월 7일까지 하는 전시이니,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가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