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간 CEO를 역임하고 있던 길버트 아멜리오(Gilbert Amelio)가 발을 끌며 들어왔다. 그는 기업을 잘 꿰매었지만, 기업의 발명가적인 영혼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이제 제가 떠날 시간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스티브잡스(Steve Jobs)가 방에 부랑자같은 행세로 들어왔다. 그는 반바지와 운동화를 신고는, 며칠은 깎지 않은 듯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털썩 앉더니 천천히 빙글 빙글 돌기 시작하였다.
"이 회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해주세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답변을 하기도 전에 그가 소리쳤다.
"바로 제품입니다. 제품들이 썩스(sucks)합니다. 이 제품들에는 더이상 섹스가 들어있지 않아요!"
- Inside Steve's Brain, p.16, Leander Kahney
상당히 드라마틱하지만, 잡스의 철학과 성격이 잘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잡스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화면상에 보이는 버튼을 너무 멋지게 만들어서, 당신이 보면 혀로 핥고 싶어질 것이다."
- 2000년 1월 24일, 포츈(Fortune)지에 Mac OS X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설명하며
머리속으로 한번 상상해보자.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과 섹스를 하고 싶을 정도인지. 이 제품의 구석 구석이 너무나도 잘 만들어져서 혀로 핥고 싶어질 정도인지 말이다.
실제로 Today Show에서 Meredith Viera는 맥북에어를 갖고 싶다며 혀로 핥는 시늉을 하기까지 했다. 자료 화면:
자그마한 버튼 하나를 디자인 할 때도 emboss의 정도라던가 색상, 크기, text주변의 패딩 정도, hover/onmousedown 때의 변환 등에 따라서 버튼의 '클릭감'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하지만 대충 적당히 하다보면 고만고만한 버튼들이 나온다. 조금만 신경을 덜 써도 순식간에 '평범함(mediocracy)'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모든 디자인, 모든 개발, 심지어 모든 마케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 순간의 집중과 관심(attention to detail)에 따라, 실제로 들어가는 시간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결과물의 차이를 가져온다. 이것이 제품 제작 전체 기간에 걸쳐서 누적되면 효과는 복리로 돌아온다. 사소한 습관과 노력의 결합이 제품의 질, 소비자의 경험, 회사의 브랜드를 좌지우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지치거나 귀찮아 지기도 하고, 일정을 맞추려고 하거나 갈등을 피하는 과정, 혹은 기본적으로 장인정신이 부족한 경우에 많은 타협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너무 물러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