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tty Studio

기업가정신 & 스타트업, 그리고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곳.

존경하는 윤석철 교수님이 예전에 N-CEO 매거진을 통하여 경영대 학생들을 위하여 친히 작성하여주신 글. 윤석철 교수님은 "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 및 "과학과 기술의 경영학" 등의 저자이시며 한국의 피터드러커라 불리우시는 물리학, 산업공학, 그리고 경영학의 석학이십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 글을 세월의 뒷편으로 보내기는 아까운 마음에 무단으로 웹에 게시를 해봅니다. 윤석철 교수님께서 허락해주시길 바라오며.. 좋은 가르침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별을 동경하는 범나방이 되라

서울대 경영대 명예교수 윤석철

1983년 9월 12일을 오늘날 삼성전자의 전, 현직 임직원들은 “암울했던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지금 기흥에 있는 삼성반도체의 첫 생산라인 기공식 날이었고, 날씨까지 궂었지만 이 날이 암울했던 날로 기억되는 것은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선진국과 10년 이상 기술격차가 나는 반도체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삼성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모두가 침울해 하고 있었다. 반도체는 어느 한 품목의 제품개발과 생산시설에 투자하고 나면 불과 2~3년 만에 그 제품과 시설은 이미 구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1983년 당시 한국의 경제 및 기술 수준에서 이런 분야에 뛰어든다는 것은 자멸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영국이 낳은 낭만주의(romanticism) 시인 쉘리(Percy B. Shelley)는 “별을 동경하는 범나방 (The desire of the moth for the star)”을 예찬했고(그림 참조), 이런 낭만주의 사조(思潮)를 받아들인 한국의 라도향(羅稻香)은 대감 댁에 시집 온 새 색시를 연모(戀慕)한 “벙어리 삼룡이”를 불후(immortal)의 인간상으로 미화했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classicism)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사조로서, 고전주의가 신(God), 이성(reason), 도덕(morality)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자 니체의 표현을 빌어 아폴론的) 체제라면, 낭만주의는 신 대신 인간(human), 이성 대신 감성(feeling), 도덕 대신 욕망(desire)을 추구하는 (니체의 표현으로 디오니소스的) 체제이다. 이성과 규범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양식에서는 “벙어리 삼룡이” 같은 인간은 발붙일 수 없다. 결국 인류문명의 발전, 오늘의 경제적 풍요는 고전주의 보다는 오히려 낭만주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반도체 이야기로 돌아가, 1983년 한국의 경제 및 기술 수준에서 반도체 산업을 “염원(念願, desire)”한 이병철 회장은 “별을 동경한 범나방,” 대감 댁 색시를 연모한 “벙어리 삼룡이”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오늘을 보라! – 그 범나방은 별에 도달했고, 그 삼룡이는 대감 댁 색시를 얻었지 않았나? 삼성 반도체는 세계 정상에 도달했고 한국경제를 떠받드는 큰 기둥이 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한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것은 낭만주의 정신과 정열에 불탔던 선구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낭만주의적 정열은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의 하나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별에 도달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라 주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자.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조선(造船) 왕국이 되어 있고, 이런 영광의 길목에는 현대중공업㈜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다. 현대중공업이 1970년대 초반 창업과 동시에 건조하기 시작한 선박은 원유(crude oil) 수송선이었다. 그러나 이런 선박은 건조하기 쉬운 만큼 부가가치 창출이 작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은 좀더 부가가치가 큰 선박을 건조하고 싶어했고, 이런 동경(憧憬)에서 LNG (Liquefied Natural Gas) 수송선 건조에 도전하게 되었다. LNG는 천연 가스의 부피를 600분의 1로 압축하여 -163°C의 액체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인화성을 지니고 있고 폭발 사고 위험까지 높은 물질이다. 따라서 1970년대 후반 당시 현대중공업의 기술 수준에서 LNG수송선을 자력 기술로 설계하고 건조하는 일은 “별을 동경하는 범나방,” 대감 댁 색시를 연모하는 벙어리 삼룡이 격이었다.

당시 LNG 수송선 제품기술(product technology)에는 멤브레인(membrane) 모델과 알루미늄(aluminum) 구형(globe) 탱크 모델 등 두 유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그림 참조). 건조원가 면에서는 전자가 경제적이었으나, 1979년 (6월 29일) 이 모델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한 이후 선주들이 주로 후자를 원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은 알루미늄 탱크 모델을 선택했다. 이 모델을 건조하려면 두께 30mm, 중량 3톤 정도의 알루미늄 판재(板材) 180여 장을 가열, 호형(弧形)으로 변형 한 후 이들을 용접하여 (13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직경 40m의 구형 탱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탱크는 LNG를 적재/하역할 때마다 급격한 온도 변화로 인한 (직경 기준 약 34cm 정도의) 수축과 팽창에도 균열(crack)이 생기지 않는 설계/시공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런 기술적 설계와 그에 따른 시공 과정은 모두 국제 품질인증기관인 로이드 선급협회(Lloyd’s Register)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19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기술 정보를 수집하고, 자체 연구를 계속한 끝에 설계도면을 제작, 로이드 선급협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승인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 제출한 설계도면은 알루미늄 탱크가 수축, 팽창 할 때마다 생성, 소멸하는 17cm 크기의 간극(間隙)을 탱크의 지지대(supporting fixture)가 흡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현대중공업은 이런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칠전팔기로 다시 일어서1991년 드디어 로이드 선급협회로부터 설계 도면의 승인을 얻는데 성공했다. 다음 과제는 설계도면대로 LNG탱크를 제작하는 일이었고, 여기서 알루미늄 판재의 용접기술은 가장 큰 난제였으니, 그것은 그 동안 이 회사가 (알루미늄이 아닌) 강철판의 용접만 해왔기 때문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용접전문가 20명을 선발, 노르웨이에 파견하여 알루미늄 용접 기술지도를 받게 한 후 용접에 임했으나, 용접 후 로이드 선급협회 품질검사에서 50%에 달하는 높은 결함(defects)율이 나타났다. 결함 이유를 구명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 토의를 거치면서, 이른 아침 작업에서는 용접재(鎔接材)와 용접봉(鎔接棒)을 미리 가열하여 아침이슬을 제거한 후 용접에 임해야 결함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 용접 용액이 중력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결함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 용접 부위(部位)가 (수직 상태가 아닌) 수평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자동 수평(水平, automatic horizontal position) 유지 장치’ 등을 개발 함으로서 용접 결함율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LNG선 건조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는 (회사 내부에서가 아니라) 회사 외부에서 타 회사의 협조를 얻어야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무게 3톤이나 되는 알루미늄 판재 180개를 480°C까지 가열하여 곡면(曲面)으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이들 판재를 들어 올리는 작업은 고무 흡착판(吸着瓣)을 사용한 기중기가 해야 했었다. 이때 고무 흡착판이 480°C의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타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로 고심하던 중, 한 엔지니어가 불소(fluoride)를 첨가한 합성수지(plastics)가 내열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은 기억을 회상하고 아이디어를 제시, 이런 사업을 하는 어느 중소기업을 찾아가 불소함유 합성수지로 고무 흡착판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수요가 많지 않은 이런 일에 투자할 수 없다고 개발을 거부했다. 이 일을 맡았던 현대중공업의 담당자는 “이 일은 돈이 되고 안 되는 경제적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기술 자립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하며, 일의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로 설득, 결국 고무 흡착판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무수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대중공업이 자력 기술로 개발한 LNG 수송선 제1호가 1993년 1월 로이드 선급협회의 최종 품질심사에 합격했고, 시운전 테스트를 거쳐 1994년 (4월 13일) 평택에 있는 LNG 기지창에서 (LNG와 비슷한 온도인) 액화 질소를 주입해보는 테스트에 들어갔다. 1시간 동안에 탱크 속 온도가 10°C씩 내려가기 때문에, -163°C까지 이르는데 16시간 이상 걸리는 극저온 테스트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이 선박은 1994년 6월 10일 “현대 Utopia”라는 이름으로 명명식을 갖게 되었다. 이 엄숙한 순간을 지켜보면서 지난 15년 동안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고락을 같이 해온 수백 명 임직원들 중 기독교 신자들은 “아, 천국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이게 바로 천국이구나” 하면서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참고: 루가복음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달력에 나오는 어느 날짜에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다, 저기다 하고 찾아서 되는 것도 아니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니라(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영역본에서 필자가 번역)

현대 중공업은 1999년 이후 해외 여러 나라로부터 LNG선을 수주하기 시작, 현재는 세계 LNG선박 건조시장의 80%를 점유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를 선박 건조 부문 세계 1등 국가로 만드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낭만주의 시인 쉘리가 예찬한대로 “별을 동경한 범나방”이 드디어 그 별에 도달한 것이다. 서울대 경영대 제자 여러분, 풍요로운 시대에 자라난 요즘 신세대 속에서는 “별을 동경하는 범나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잘사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부디 별을 동경하는 범나방 되어 굳건한 노력으로 그 별에 도달 함으로서, 고용을 창출, 일자리 없어 고민하는 많은 이웃을 구제하소서. 우리 인간사회 최대의 가치는 고용 창출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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