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tty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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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게임을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다. 검색 엔진에서도 '게임의 본질'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면 시뮬레이션이다, 재미이다 등의 이야기가 보인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형태의 그 무언가가 현실과 어떠한 면에서 다른지를 주목하고, 거기에서 게임이 갖고 있는 독특함이라던가 유사성을 비교해가면서 그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라프 코스터재미 이론에서 게임의 본질이 패턴 인식이라고 하며, 게임이 현실과 비교하였을 때 갖는 의미와 유사성을 조명하였다. 그의 접근은 매우 본질적이며 실제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구별짓는 좋은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는 게임에 참여하는 객체의 행태적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패턴 인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면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패턴 인식이라는 것은 매우 광범위한 인지활동이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일들에서 패턴 인식을 활용한다.

게임의 본질의 bottom-line은 어디일까? 패턴 인식이 있으면 게임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매체적 특성(디지털 게임기나 상호 약속 하에 이루어지는 현실에서의 게임 등)이나 당시의 문화적 배경하에 생겨난 인식의 형식적 껍질을 모두 벗기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것이 남지 않는다. 그리고 남아있는 것도 엄밀히는 명쾌하게 자를 수 있는 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기준은 바로 방향성 있는 피드백이다. 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이에 대한 비교적 즉각적인 피드백이 반영되는 것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게임에서 기대하는 재미나 몰입도를 경험하게 된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즉각적이고 반복되며 지속적인 (긍정적) 피드백을 통하여 자기 긍정을 증가시키고, 자기 불안을 감소시키는 방향, 그리고 이를 통한 자기 성장(의 환상)을 줄 수 있는 형태면 게임의 조건이 충족된다.

예를 들어 보자.

가위 바위 보는 왜 게임이 되는가? 가위 바위 보는 방향성을 갖는다. 대부분 아이스크림 내기 등의 일련의 목적을 가지며, 과정을 통하여 즉각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패턴의 단순성과 지속성이 떨어지는 규칙이기 때문에 몰입감이 높지는 않지만, 강도 높은 목적(8명에게 밥사기)과 긴장감을 높이는 피드백(1:1 상황에서 3판 연속으로 비겼다)이 주어지면 몰입도는 매우 높아지게 된다.

가위 바위 보의 피드백을 바꾸어 보자. 가위 바위 보에서 무엇이 무엇을 이기는지 규칙이 랜덤하게 바뀐다고 하자. 그리고 과정 속에서도 누가 이기고 졌는지 알 수 없다. 20판 후에 심판이 본인만이 알고 있는 규칙으로 승자 패자를 가르쳐준다. 게임으로서의 모습이 심하게 훼손된다. 만약 여기서 승자 패자의 규칙이 확인 불가능한 형태라면 피드백의 효용성은 더욱 떨어진다. 승자 패자 조차 없다면? 더이상 게임이 아니다.

2003년 가위바위보 챔피언쉽 대회 중...


집에서 세탁을 하는 것은 왜 게임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가. 여기엔 문화적 인식과 일이 갖는 주체성의 결여라는 심리학적 변수가 있다. 분명 세탁을 더 잘하고 못하고는 차이가 있다. 청바지와 흰 옷을 잘못 빨아서 옷에 물이 든다던가, 온도를 잘못 맞추어서 옷이 줄어든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패턴은 제약을 주지만 긍정의 피드백을 주진 못한다.

이번엔 이 세탁을 게임 같이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 일련의 보상 피드백을 넣으면 된다. 현재는 기술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시뮬레이션은 가능하다. 가상의 agent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agent는 당신이 세탁을 할 때 당신의 세탁 결과물을 일련의 규칙을 통하여 점수를 매겨준다. 소요한 시간, 세탁을 할 때 얼마나 잘 묶어서 최소한의 단위로 반복하였는지, 세탁 후 깨끗해진 정도를 얼룩과 세균의 분포로 측정하여 주고 즉각적으로 점수를 알려 준다. 낭비된 노력, 잘못된 얼룩이나 온도조절 등은 감점 요인이 된다. 또한, 이 기록을 꾸준히 축적하여 그래프를 통하여 보여주고, 주변 동일 연령대나 비슷한 지역에서 랭킹을 매겨준다. 그리고 여기서 랭킹이 높은 사람에겐 매달 패밀리 레스토랑에 식사권을 제공해주고, 강연을 열게 해주며, 최첨단 세탁기 및 냉장고 등을 제공해준다.

피드백과 보상 체계를 넣은 것이다. 어떨까. 조금은 세탁이 더 흥미진진해 지지 않을까?

실제로 이를 체감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에 공문수학(요즘은 구몬이라고 하던가)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 장에 대략 20문제 정도의 사칙연산 문제가 주어지고 1주일에 한번씨 오는 선생님이 오기전에 주어진 양을 풀면된다. 대부분 하기 싫어서 찡찡거리다 오기 직전에 마구 풀어댄다. 재미도 없다.

최근에 닌텐도DS Lite에서는 Brain Age같은 게임에서 단순한 숫자를 계산하는 문제를 내고 사람들이 미치도록 하게 만드는 쾌거를 거둔 바 있다. 물론 다른 게임들도 들어있지만, 대부분 우리가 도전적이라고 하기엔 흥미가 다소 떨어질만한 내용을 가진 것들이다. 숫자 암기하기, 단어 암기하기 류 따위 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몰입해서 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피드백 시스템이다. 즉각 즉각 한 문제 한 문제를 풀 때 마다 띵동~ 소리가 나고, 타블렛으로 손으로 슥슥 쓰는 인터페이스가 주는 손맛. 그리고 시간 기록을 계속해서 갱신하며 좀더 빨리 좀더 빨리 풀게 되는 것. 속도가 충분히 빠르면 잘했다고 칭찬도 해준다. 그리고 이 기록을 계속 계속 매일 쌓을 수 있고 당신의 두뇌의 나이가 몇 살인지를 가르쳐 준다. 초기엔 이걸 왜 해야하는지 두뇌의 MRI 사진을 보여주며 모티베이션까지 시킨다.

사실, 공문수학과 Brain Age 게임의 행위 자체는 완전히 동일한 과정이다. 단순한 사칙 연산 문제를 풀기. 하지만 즉각적이고 자기강화적인 피드백이 주는 쾌감은 동일한 과정을 행해야하는 사람에게 천치차이의 경험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잘할때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도 피드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장 내놓은 결과물에 상사가 좋은 피드백, 즉각적인 피드백, 적절한 피드백을 주면 우리의 경험은 강화되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만약 내 놓은 보고서가 6개월 동안 함흥차사가 되고,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하게 되면? 일에 대한 보람을 잃게 된다. 부정적인 피드백만 받는다고 하면? 좌절감에 회사를 그만둘지도 모른다.

이 정도 시점에서 의문이 들게 된다. 피드백은 어느 정도의 즉시성이 있을 때 게임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게임은 아니지 않은가.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것도 피드백이 있지 않은가? 언제 재미를 느끼고 언제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이에 대한 엄밀한 답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 즉시성이 다소 떨어져도 된다. 방향성(사용자의 가설과 예측)만 확인이 가능하면 당장의 보상과 같은 긍정적 피드백이 없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RPG에서 레벨 40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가다를 하면서 경험치가 쌓이는 것을 알수 있으면 당장 레벨이 하나씩 오르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인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상의 매체나 참여자간의 일련의 단순한 규칙에 의한 것이라면 게임 정도의 범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매체적 특성을 제거한다면 게임과 현실의 경계는 상당 부분 허물어진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라프 코스터의 패턴 인식의 관점에서는 더더욱 게임과 현실은 경계가 모호하다. 일을 즐기는 사람의 상태는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의 상태와 흡사하다. 그에게는 그 일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피드백이 다른 사람보다 의미가 있고 즉각적이라고 체감하며, 자신이 일하는 것의 방향성이 남들보다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길을 지금 처럼 빨리 가면 남들보다 빨리 골라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동차 레이서처럼 말이다.

수학 문제집 풀이 대한 해답의 일부는 예전에 mediaflock에서 언급한적 있는 재미요소와 몰입 그래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문제, 혹은 목적의 난이도와 형태에 따라서 피드백의 즉시성과 강도가 달리 필요하다. 손 쉬운 문제라면 공문수학 만큼이나 빨리 풀 수 있지만 그만큼 흥미는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어려운 문제라면 한 순간 한 순간이 불확실하고 자기 긍정이 약해지며, 자기 불안감이 증가한다. 어려운 증명 문제를 유도할 때 한 순간 한 순간 영감이 따라와주지 않으면 쉽게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몰입 그래프


만약 이때 검색 엔진의 추천 검색어처럼 자신의 매 선택에 대하여 즉각 즉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잘했어! 아냐 그길이 아냐! 잘했어! 3단 컴보로 남들보다 더 잘하고 있어! 90% 증명 완료야! 그래 완성이다! 남들보다 3분 더 빨리 풀었기 때문에 30점 추가고, 이로서 너는 증명마스터리 레벨 12에 도달했어. 그리고 전체 랭킹에서 3위이고, 이 대로라면 이번 주에는 김태희와의 일일 데이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거야. 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비현실적으로 강한 보상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피드백 시스템이 고안되어야 하고, 그 피드백 시스템이 갖는 시간 딜레이(즉시일 수도, 장기적 피드백일 수도 있다)와 강도, 유의미함에 따라 참여하는 사람이 느끼는 재미, 몰입감이 달라지게 된다. 아울러 우리가 말하는 '게임'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게임으로 가면 좋냐고? 어려운 것을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기술적 이유나 사회 문화적 인식, 매체적 한계 등으로 힘들겠지만, 분명 게임과 다른 영역과의 접목은 흥미로운 분야일 수 밖에 없다.

photo by perfectgurl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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