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씨의 추상화에 대한글을 읽다보면 느끼게 되지만, 학자들은 참 추상화를 좋아한다. 나도 그러하다. (여기서 그러므로 나는 학자이다 같은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없길) 추상화를 통하여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지적 쾌감이라 일컬을 만한 느낌은 일종의 깨달음과도 같아서 그 마약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급기야 물리학자들은 대통일장이론을 찾기위하여 매일 매일을 노력하고 있다(약간 다른 맥락도 있지만).
여기 저기서 패턴을 찾는다. 우리의 기억, 학습, 그리고 진화, 주식 시장, 구전 마케팅의 효과, 문명의 발달과 meme...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같은 문제(사실은 패턴)이다. 그리고 이 패턴이 단순하게 문장 속의 단어가 아니라 생상한 시각적 체험과 이입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머리속의 수 많은 개념이 소용돌이 치면서 같은 패턴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마냥 상상 엑스터시에 부유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디부터가 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지적 쾌감이 가져다주는 비현실성을 무시할 수 없다. 추상화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거나, 한 곳에서 배운 것을 다른 곳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응용력을 부여하기도 하고, 삶이나 자신의 분야에 대한 통찰을 줄 수있을 뿐더러,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조엘씨의 말 마냥, 저 우주 끝까지 추상화를 해버린 나머지(천문학자라면 필요하겠지만) 지구에 다시 내려오지 못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데?" 같은 현실적 질문에서는 다시금 말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마케팅 계획을 수립할 때도, "아, 그래 사람들의 구전 효과는 마치 뇌세포의 뉴런과 시냅스, 글리아 세포가 반응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아. 이렇게 반응하고, 이러한 패턴을 보이니, 거시적으로 이렇게 발달하고, 잘되면 이러한 복잡한 조직을.." 방향으로 추상화를 하고 지적 자위에 오르게 되면, "그래서 다음달 이벤트는 어떻게 하지?" 같은 질문은 이미 자신에겐 어떻게 되어도 좋은 것인 마냥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리게 된다.
고도의 추상화를 즐기되, 현실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동시에 현실적 실천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 세상이니까.
life is in detai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