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tty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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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er님의 글에서 등장한 마지막 의문 - "어떻게 나와 다른 사람이 구분되는 것일까?" 에 대하여는 결국 진화론과 복잡계, 창발성 측면에서 고민해야만 과학적 이해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납득이 가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철학적(물론 철학이 예술과 과학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정의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광의를 제외하고 다소 편협한 편견하의 정의하에서)인 고찰이나 (사후 기술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심리학적 접근은 이러한 형태의 궁금증에 대하여는 시원한 답을 주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은 조금 더 솔깃하긴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결국 컴퓨터가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인(np-hard같은 것 말고) true random과 induction쪽은 이미 자연에 널리 퍼져있는 복잡계의 자기조직화 방식과 창발성, 그리고 싱크에 대하여 고민해보지 않고서는 간지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사람의 전두엽이 발달하게 된 배경임과 동시에 전두엽의 발달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 회귀적 사고라고 한다. 즉, 자기 자신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멍멍이에게 거울을 보여주면 그것에 비치는 상이 자기 자신인지를 구별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하고(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기 자신과 외부에 대하여 다른 차원에서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외부 세계와 구별하여 사고하고 이를 통하여 자아 성찰이나 자기 반성, 그리고 삶의 의미 등에 대한 많은 고민거리를 낳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두뇌 안에서 차집합의 방식으로 형성된다고(아직은 설에 가깝다) 하는데, 쉽게 말해 외부 세계를 인지하면서 전체 공간에서 외부 세계로 인지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정반대인 것 같다는 것이다. 항상 '나는 배가 고프다' '나는 졸립다' '나는 아프다' '나는 누구일까' 같은 '나' 중심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동양은 좀 덜하다 해도), 사실 나를 인지하게 되는 것이 나중이라니, 과연 그러할까?

이 문제는 별개로 하고, 그렇다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물음이 결국 '의식의 형성'이다. 의식이 무의식에서 창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만 알려져있는데, 그 실제 과정에 대하여는 아직 까지도 엄격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아직도 수 많은 교수들과 연구진들이 수 많은 설들을 토해내고 있지만, 그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재현 가능한 형태인지를 알기는 어렵다.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그러한 의식의 창발과, 두뇌의 발달에서만이 가능한데, 이러한 두뇌에 근접한 구조를 인위적으로 생성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확실해진 것은 의식은 영혼이 부여하는 것도, 인간의 두뇌에 짠 하고 삽입되는 완성된 형태도 아닌, 뇌세포들(agent)의 local interaction(시냅스를 통한 화학 물질이나 전기 신호의 전달 같은 것들)들이 이루어낸 무의식의 패턴 속에서 창발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의식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의식 중 어떠한 것이 나를 외부로 부터 분리해내서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아마도 단서는 단세포류 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박테리아들의 활동을 보면 우리가 '의식'이라 일컫는 행위들을 관찰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분명 박테리아들도 특정 화학물질이 발견되면 그쪽으로 향하여 가거나 - 먹이가 있다고 기대하고 - 혹은 피해간다 -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끼고. 하지만 여기서 기대하거나 느낀다는 것이 인간의 의식적 사고만큼 고차원적인 것은 아니다. 일종의 피드백 시스템에서의 화학 반응 같은 것들인데, 세포 이하의 각종 구성 요소들과 그 이하의 분자들 사이의 전기적, 화학적 반응이 창발되어 세포의 막과 그 안에 속한 물질들로 자기조직화를 하면서 그것들이 일종의 복잡계로 거듭나고, 그 복잡계가 양성, 음성 피드백을 통하여 반응하는 것을 우리가 사후 기술을 하면서 '먹이를 향해 나아간다' 라고 부르거나 '위협을 느끼고 피한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단서는 세포의 막에서 알 수 있는 '물리적 범위'와 피드백의 종류와 범위로 인한 복잡계의 반응 여부이다. 사람의 의식도 분명히 사람의 두뇌와 사람의 몸이라는 물리적 범위안에 한정되고, 직접적인 피드백은 그 물리적 범위 안의 여러 기관들과 신경들에게서 오게 된다. 이러한 직접적 피드백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1차원에 가까울 수록 (찌르면 아프다, 위가 비어 있으면 배가 고프다 같은) 자기 자신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패턴들로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들이 생리적인 부분, 관계적인 부분 등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쌓이면서 패턴들의 결합이 하나의 창발적인 가상의 범주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나'라고 의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뇌는 물리적 고통과 가상의 고통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팔이 잘린 후, 실제로 팔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그 팔이 있던 곳의 위치에 계속 고통이 느껴지게 되는데, 이러한 증상을 겪는 사람에게는 팔이 있던 곳에 거울을 놓고 반대쪽 팔의 이미지를 비추어 주게 되면 고통이 사라지면서 증상이 없어진다고 한다. 두뇌는 '정상임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 그것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고차원적인' 의식은 그것을 진짜라고 믿지 않겠지만 말이다.

정신적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fMRI 촬영 등을 통하여 확인을 하여 보면 사람은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을 받았을 때 마치 실제 고통을 받은 것과 유사한 형태로 뇌가 반응을 한다고 한다. 사실 뇌 세포 단위에서는 그것이 실제 고통인지, 가상의 고통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뇌세포가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이상.

결국 나랑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깔끔하게 면도날로 도려낸 것 처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뇌 세포 활성의 패턴의 반복에 따른 범주화이고 그 범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피드백의 유형과 반복성, 강도, 그리고 일관성 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와 다른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감정 이입'이다. 우리는 연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같은 형태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실제로 자기 자신이 마치 그 상황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거나 감정을 느낀 것에 준하는 - 감정 이입을 덜 하는 사람일수록 정도도 덜한 - 느낌을 받는다. 두뇌가 '동일시'를 하기 때문인데, 사실은 동일시라는 자기 중심적 설명 보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금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끼는 이것들이 불러일으킨 일련의 뇌세포 활성 패턴들이 내가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패턴이라면 꼭 일치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관련되었던 패턴에 속하는 세포들도 함께 활성화가 되면서 그것이 경험의 재생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을 보면 예전에 본인이 직접 경험했던 유사한 경험이 떠오르거나, 그 당시에 맡았던 향이 생각나기도 하고, 먹었던 음식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이건 아니건 간에 두뇌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경험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하여 느끼는 공포감이나 긴장 등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이것은 진화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유전자'와 '이미 코딩 되어있는 패턴'으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는 보기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실제 기록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그러한 것이 가능해지는 형태로 발달하도록 하는 도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시 말해, 네이버 지식인이라고 치면 오늘날에 있는 모든 지식인의 데이터가 이미 다 들어가있는 것이 아니라(들어갈 정도의 용량은 되지만) 그러한 데이터가 들어갈 공간과 그러한 데이터가 생성가능한 환경과 상황, 그리고 조건들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와 이미 두뇌가 생존이나 생식 등과 연결된 부분을 자극하는 것에 대하여는 반응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그 음식을 심하게 피하게 되고, 본능적으로 고통을 기피하며 - 우리는 고통이 괴롭다는 것을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고통을 받으면 괴로워한다 - 생존을 향해 발버둥 친다. 이는 자기조직화적 측면에서 피드백에서 나타나는 효과와도 비슷한데,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자기 조직화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체계를 적응시켜 나간다. 이러한 것이 고도의 개념 - 공포나 위협 - 등에서도 두뇌는 유사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은 상당 부분 사회를 통하여 학습을 받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은 칼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지만, 찔리거나 다치고 나면 무서워 하게 된다. 그렇다면 굳이 난도질을 당하지 않아도 그러한 작은 빌딩 블럭들 위에 그 이상의 개념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다.

굉장히 산만하게 글을 전개하였는데, 대충 내용을 통하여 의식의 출현과 자기와 타인을 나누는 범주화에 대하여 논하여 보았다. 두뇌의 일부분이 파괴되면 범주화 능력이 떨어지게 되어 타인과 자신을 잘 구별하지 못하거나,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문제, 혹은 더 작게는 서로 다른 두 물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뇌세포의 패턴의 측면에서 보면 기본적인 법칙이 위협을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추상적 차원에서는 유사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 말이 길었으니 이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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